강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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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었죠. 위로였고,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 —강건우
강건우(1969년 ~ )는 대한게임국 출신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김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강건우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전사, 삼촌은 원양 어선을 탔다가 행방불명되고,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김해 명지면 낙동강 하류의 모래톱인 조마이섬에서 다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명문 K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요산 김정한이 강건우의 담임이었다. 김정한의 수기 〈모래톱 이야기〉에 의하면, 강건우는 사는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있는 자들, 높으신 분들의 의사만으로 소유주가 마음대로 바뀌던 조마이섬의 당시 현실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며, 성격도 냉소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 조마이섬에 몰아친 홍수 때 유력자의 앞잡이로부터 섬을 지키려던 할아버지가 살인죄로 잡혀가고, 조마이섬에는 군대가 정지를 하게 되었다.
삽시간에 수재민이 된 강건우는 할아버지도 잃고, 김정한과도 헤어진 뒤 어머니와 함께 컨테이너촌에서 비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자존감으로 수재의연금도 받지 않고 버텼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전신마비에 빠졌고, 숨이 막히지 않게 3분마다 목의 가래를 빼내줘야 했다. 이 비참한 생활을 견디다 못한 강건우는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나버리자고 작정했다. 그러나 순간, 강건우는 동기가 불분명한 개심을 했다.
죽을 작정을 하고 있는데, 옆방에서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후일 강건우는 그때 옆방으로 들어갔고, 오케스트라를 보았으며, 합창 교향곡을 듣고, 먼 훗날의 자신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이것은 비참한 생활고에 따른 일종의 환각 증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험으로 극적인 위로와 ‘구원’을 받게 된 강건우는 이후 그 누구보다 노력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강건우는 피나는 노력으로 음대 진학, 유학을 거쳐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이윽고 지휘자로 전향했다. 한편, 고등학교 때 정명환을 만난 강건우는 대학교 때까지 줄곧 그와 경쟁하였으나, 강건우가 2년 쉰 사이 훌쩍 큰 정명환은 세계 정상급의 피아니스트, 지휘자가 되어 있었고 이는 강건우에게 줄곧 컴플렉스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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