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포스텍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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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농담

“포항 물회, 너무 맛있어요~! 이거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나요?”

한 맛집 프로그램 리포터

“어, 별거는 아니고, 저기 포스텍에서 맹글었다는 화공약품을 쪼까 넣어부렀지.”

맛집 사장, 비밀을 털어놓으며

포항포스텍시국대전카이스트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도시국가로, 포항제철의 쩔을 받고 있다.

차례

[편집] 역사

[편집] 건국

1985년 전라민국과 대립하던 전대갈대통령은 대전카이스트시국전라민국의 손에 넘어갈수도 있음을 우려하고, 또한 대전카이스트시국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카이스트시국을 견제할 또하나의 시국 건설을 원하였다. 그러던 도중에 겡상민국에 근거를 두던 포항제철이 포스텍시국의 건국을 준비하자 겡상민국에 근거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전대갈은 건국 허가를 내린다. 그 후 포항제철의 후원으로 건국 위원회가 발족하고 건국의 기틀을 다져서 1986년 12월 건국됐지만 백괴스럽게도 1987년 3월부터 정식으로 이주민을 받았다.

[편집] 대전카이스트시국과의 냉전과 시국전쟁(과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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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포항포스텍시국은 포항제철의 쩔로 빠르게 발전, 88~94년에는 6년간의 공사로 경쟁국가인 대전카이스트시국도 건설하지 못한 불가사의 포항방사능가속기를 건설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대전카이스트시국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대전카이스트시국에서는 88년도부터 거론되어온 이 공사에 위기감을 느끼고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특수부대인 쿠스를 창설하여 끊임없는 훈련으로 썬마이크로시스템사를 침략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한다. 이에 포항포스텍시국에서는 이듬해인 92년 쿠스에 대항하기 위해 플러스를 창설하여 두 시국의 긴장은 고조된다. 이어 두 시국은 서로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도발을 행하던 도중 카이스트시국은 95~96년경 쿠스의 지도자를 강경파로 바꾼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포스텍시국은 3월 무리한 도발을 감행하여 카이스트시국의 속령중 3군데를 침투한다. 이러한 도발을 참다참다 못한 카이스트시국은 96년 4월 포스텍시국에 이례적으로 대대적인 기습전을 감행, 포스텍시국의 공식업무가 1개월간 마비될 지경에 이른다. (이 때 군사훈련으로 서울화학공화국의 이화여대가 공격받는다.) 위기감을 느낀 포스텍시국은 서울화학공화국에 지원요청을 했고, 두 시국에 전쟁에 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던 공화국정부는 떡찰을 통해 두 시국간의 전쟁을 무마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카이스트시국은 마치 천안함 도발을 한 부카니스탄처럼 자신의 도발을 부인했고, 서울화학공화국정부는 결국 쿠스의 핵심인물을 납치하여 카이스트시국의 전투력은 순간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따라서 시국전쟁의 서막이었던 대규모 도발은 카이스트시국의 압도적으로 강한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포스텍시국-화학공화국 동맹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된다.

이 대규모 도발 이후 포스텍시국은 카이스트시국과 더욱 더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냉전기동안 카이스트시국은 서울화학공화국과의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개전 초기에는 서울화학공화국을 크게 위협하였다.? 한편 포스텍시국은 겡청전쟁에 잠깐 휘말렸던 것 외에는 포스코의 후원으로 꾸준한 발전을 이룩하여 결국에는 카이스트시국과 비슷한 전투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2}}}}‎의 고향이 포항이었기 때문에 {{{2}}}}‎에 빌붙어서 확실히 카이스트공화국에 맞설 수 있는 지위를 확립하였다.

두 시국간의 전쟁은 수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서로간의 국가를 공격하고 방어하기를 반복한 매우 긴 전쟁이었다. 두 시국간의 전쟁을 유심히 지켜보던 서울화학공화국수원생물공국, 그리고 전주물리공화국은 이 전쟁에 사이언스 워, 즉 과학전쟁이라는 백괴스러운 명칭을 붙여주었는데, 그 이유는 알 게 뭐야. 지금까지의 크고 작은 군사적 도발과는 달리, 시국전쟁은 양국의 공대생들이 다양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다 카더라.

최초의 대격돌은 2002년에 발생했다. 2002년 포스텍시국은 카이스트시국의 군사력이 서울화학공화국과의 전쟁으로 대부분의 전력이 경기기계제국에 몰려있던 틈을 타서 카이스트시국의 본토로 진격, 기습에 당황한 카이스트군의 국경수비대를 차례차례 무찌르고 카이스트시국에 대한 공성전을 펼친다. 하지만 카이스트시국은 본토에 남아 있던 마린의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하여 포스텍군의 부대를 겡상민국까지 후퇴시키는데 성공한다. 1년 후 2003년 카이스트시국군에 의해 포스텍시국의 본토가 침략된다. 포스텍시국군은 이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하지만 카이스트시국군은 적분귀신을 소환하여 적분미로로 포스텍시국군을 당황시키고 포스텍시국은 점령당하는 수모를 맞게 된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흐른 후 두번의 패배에 이어 3번째로 진다면 포스텍 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시국민들은 전적으로 전쟁을 지원한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시국군은 다시한번 군사를 일으켜 카이스트시국으로 진격,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카이스트시국 점령에 성공한다.

이후 시국전쟁은 더욱 치열해져 후에는 두 시국의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09년도에는 신종플푸에 의해 두 시국 모두 전투력에 손실을 입어 휴전하게 된다.

[편집] 시국전쟁 이후

대전카이스트시국은 포항포스텍시국과의 전쟁에 전투력을 소모한 데다가 포항 출신의 {{{2}}}}‎이 포스텍에서 지정해준 적절한 위치에서 포스텍의 계산에 따라 적절하게 물길을 틀어버림으로써 대전을 수몰시킴으로써 멸망하게 되고, 포항포스텍시국은 {{{2}}}}‎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유일한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편집] 교육

젖절하 교육제도를 취하는 포항포스텍시국에는 포스텍이 최고대학이며 포항포스텍부속고와 과학고, 영심이고, 포항고 등의 고등학교가 있는데 영심이고는 병맛적이게도 남고여서 인기가 없기 때문에 대세는 포항포스텍부속고와 과학고, 포항고가 차지하고 있다. 중학생들은 저 고등학교에 가려고 피땀을 흘린다.

[편집] 정치제도

포스텍 최고경영자 출신 박태준이 종신명예국가원수이나 실권은 없어 그 아래에 겡상민국 지역 내 최연소 행정장관인 박승호가 정권유지를 돕고 있다. 더욱이 이명박이상득 형제의 지원덕에 경제는 유래없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카더라.

입법기구로는 이상득이 의장으로 있는 형님위원회가 있다.

[편집] 도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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