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토시조
히지카타 토시조(왜말: 土方歳三, 1835년 5월 31일 ~ 2051년 6월 6일)는 왜국 도쿠가와 막부 말기 때 양이 세력을 뒤엎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신센구미의 부장이다. 1869년 6월 20일에 홋카이도 담진(왜말: 胆振) 지청의 함관(왜말: 函館)에 있는 오릉곽(왜말: 五稜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가, 돌연 1960년 6월 7일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때부터 아라키 토시유키(왜말: 荒木利之)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살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별명은 노가다 토시조라고 한다.
차례 |
[편집] 유년기
본적은 무장국 다마군 돌마을(왜말: 武蔵野国多摩郡石田村, 현재의 동경소비에트임시정부 일야시 석전)이며, 농사꾼의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이웃 마을에 사는 곤도 이사미와 어릴 적부터 친구먹기를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덫을 놓거나 가짜 듕귁집을 차리는 등 많은 장난을 치고 다녔다.
[편집] 청년기
곤도 이사미와 잘 놀다가, 곤도가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보았다고 하면서 '자네도 같이 양이 세력을 없애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일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자신도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에 홀려서 훗날 귀신 부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편집] 홋카이도에서
곤도가 죽고 난 뒤 신센구미 잔당들을 이끌고 홋카이도의 담진 지청에 있는 함관으로 도망쳤는데, 그곳에서 아이누인들한테 집단으로 다구리를 당했다.
[편집] 1896년부터 1960년 사이에
히지카타의 친척들의 말에 따르면 달러 멘디를 만나러 인도에 갔다거나, 캐나다에 칸나다어와 하키를 배우러 갔다거나, 이란에서 사기꾼들한테 당하다 이라크에서 살아 나왔다고 하지만 분명치 않다.
[편집] 1960년 이후
1960년 6월 7일에 다시 왜국으로 돌아가 보니, 히지카타의 친척들은 어느 새 그를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 때부터 이름을 바꾸고 나서 지금까지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집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알바로 이용해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알바생 이름을 아라키 히로히코(왜말: 荒木飛呂彦)라고 지었는지는 알 게 뭐야.
그 알바생이 그린 만화가 훗날 쬬의 기묘한 모험으로, 수많은 죠죠교 신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편집] 일생의 업적들
[편집] 석전 가루약
그는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석전 가루약'(왜말: 石田散薬)을 만들어 팔았다.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서 무언가를 생각한 히지카타는 강둑에 있는 고마리라는 풀을 갖다가 으깨고 지지고 구워서 발라 보니, 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을 알고는 주변에 살고 있는 애들과 함께 플랜테이션 사업을 시작한 것이 석전 가루약의 시초라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이 약을 발라보고 부작용이 생기자, 고마리가 있는 곳에 가 보니 석면이 묻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의 입에 석면 가루약라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히지카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ㅽ, 내가 그 따위 사업을 하지 말았을걸!
[편집] 노가다
히지카타 토시조의 성씨는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졌는데, 19세기 말에는 아직도 왜국에 문맹이 많이 산재해 있었으므로(대개 쪽바리들이 그러함), 오늘날의 덕후 총리 아소 다로처럼 한자를 제대로 못 읽는 현상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히지카타의 한자 토방(土方)을 '도카타'라고 읽었고, 그 말이 대한게임국으로 건너와 오늘날의 노가다라는 어원이 되었다.
[편집] 그런데
2004년에 왜국방송수신료징수공사(흔히들 NHK라고 부름)에서 방영하는 사극 '신센구미!'에서 야마모토 코지(왜말: 山本耕史)라는 자가 히지카타 토시조 역할을 맡았는데, 모습이 꼭 그를 닮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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